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나라 채권 (문단 편집) == 중화민국의 채무승계 거부 == 청나라의 민자철도 국유화시도는 민중의 엄청난 반발을 불렀고, 결국 [[신해혁명]]이 일어나, 청나라는 멸망하고 [[중화민국]]이 수립됐다. 철도 국유화시도는 결국 무산되었지만, 일단 청나라가 채권을 외국에 팔기는 했으므로, 이 채권의 변제의무는 청나라의 계승국인 중화민국으로 넘어왔다. 그러나 중화민국 건국 직후 [[위안스카이]]의 전횡과 [[군벌/중화민국|군벌]]들의 발호로 대륙이 혼란에 빠졌고, 청나라 채무의 계승은 꿈도 못꾸었다. 이후 베이징에 세워진 세워진 [[북양정부]], 그리고 1927년 북양정부를 [[국민당의 2차 북벌|북벌]]로 붕괴시키고 집권한 [[난징시|난징]]의 국민당 정부도 모두 채무승계를 거부했다. 일부 유투버들이 마치 [[장제스]]의 난징정부가 청나라 채권의 원리금을 상환하다가 디폴트를 선언한 것으로 주장하는데, 난징정부도 청나라 채무의 승계를 처음부터 거부한 것은 이후 집권한 [[중화인민공화국]]도 마찬가지다. 그리고 [[대공황]]에 접어들면서 중화민국 경제도 붕괴하여 1930년대 이래 중화민국은 자기가 발행한 모든 채권의 디폴트를 선언했는데, 이미 거부했던 청나라 채권은 아예 논할 가치가 없었다. 1911년 발행된 청나라 채권을 보유하면서 그 후계국인 중화민국 정부에 이의 승계를 요구했던 미국 금융기관들은 일본 및 공산당과 내전을 벌이고 있던 중화민국의 사정을 볼 때, 더이상 받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 채권을 손절해 버리고, 골동품 수집상 등에 팔아버렸다. [[국공내전]]이 끝나고 세워진 [[중화인민공화국]]은 중화민국의 모든 국제적 지위를 승계한다고 발표했으나, 채권과 채무의 상속은 모두 포기했다. 중화민국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은 승계를 거부한 것이다. 물론 그 전에 이미 중화민국이 거부한 청나라 채권은 말할 나위도 없다.[*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을 대신해 청나라와 영국이 맺은 [[난징조약]]을 계승한다고 발표했고, 그 화답으로 영국은 서방국가중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다. 결과적으로 1997년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영국에게 홍콩을 돌려받았다.] 사실 중국의 혼란기에 후계정부가 전임정부의 채권에 대해 디폴트 선언한 일은 중화인민공화국만은 아니었다. 중공에 의해 전복된 [[중화민국]]의 장제스 정부도 20년전에는 그들이 전복한 [[북양정부]] 채권의 채무승계는 거부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